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 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이나 선물을 주는 의미로 다들 알고 계실꺼라 생각 하실꺼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렌타인데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고자 글을 써볼려고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찾아오는 발렌타인 데이를 맞이하여 우리나라 발렌타인 데이 유래와 왜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 선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렌타이데이 유래
명확하지는 않지만 로마시대 황제 클라우디스 2세는 원정 군인들의 군기문란을 우려하여, 미혼 남성들 위주로 징집하게 되어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결혼을 금지시키게 되었고,
그러던 중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밸런티노 신부가 이를 어기고 어느 연인의 혼인식을 진행하다가 사형을 당한 날이 2월 14일을 발렌타인 데이로 지정하여 기념하는 날이 된 것으로 이 것이 발렌타인 데이 유래라는 주장과 고대 로마의 미신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축의 번식과 풍요를 관장하는 늑대신 루페르쿠스를 기리던 축제인 루페르칼리아에서부터 기원하였다고 보는 주장도 있습니다.
기독교에 위 축제가 흡수되어 풍습처럼 내려오다가 이러한 풍습을 교회에서는 이단으로 보았고, 교황 젤라시오 1세가 이 축제를 금지하면서 2월 14일을 사랑의 날로 지정하고 밸런티노 신부를 연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정된 것이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라는 주장입니다.
둘 다 밸런티노 신부를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같은 유래로 볼 수 있으며, 아마 위에 주장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이 붙은 게 아래의 주장인 것 같습니다.
또 한편, 14세기 영국의 시인 초서의 시에 모든 새들이 교미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특별한 날이 2월 14일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것으로부터 시작한 믿음이 구체화된 것이 발렌타인 데이 유래라고 주장도 있습니다. 밸런티노 신부의 순교를 믿는 쪽은 가족간의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또는 죽음에 무릅쓴 사랑이라는 의미에서 가족간 또는 연인들간에 감사와 고마움의 표시로 밸런타인 데이 카드와 선물을 교환하는 풍습으로 자리잡았다고 하고, 새들이 교미를 시작하는 날이라는 주장에서는 연인 간의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교환하게 된 발렌타인 데이 유래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발렌타인 데이 유래에 대하여 첫번째 밸런티노 주교의 순직일이라는 주장이 인터넷으로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축일이라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든 단어입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세명 즉 남녀와 밸런티노 주교까지 한날 한시에 사형이 집행되었는지 누가 죽었는지도 불분명한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대세는 밸런티노 신부의 순직일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발렌타인 데이 유래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니 이런 저런 주장이 있고, 현재 지지를 받는 것은 이 것이다 정도로 알아두시면 될 듯 싶습니다.
◎발렌타인데이 역사
초콜릿을 주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네요.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 업체의 밸런타인 초콜릿 광고를 시작으로 “발렌타인데이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이미지가 일본에서 정착되기 시작했고 1960년 일본 제과 업체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고백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서 여성이 초콜릿을 통해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서의 일본식 발렌타인데이가 정착되기 시작했데요. 발렌타인데이에 남성도 좋아하는 여성에게 초콜릿을 주자라는 캠페인을 시작하여 초콜릿 상표 인쇄가 거꾸로 새겨진 초콜릿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발렌타인데이 한국의 시작
발렌타인데이는 먼저 1980년 중반에 일본에서 우리나라(한국)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대중적인 사랑고백의 날로 널리 퍼져서 지켜오게 되었습니다. 일부 발렌타인데이를 장사를하기 위한 상술에 지나지 않다고 하지만,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나누는 의미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지켜오고 있습니다. 물론 발렌타인데이 때가 되면 과대포장 및 가격 상승이라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이 부분은 좀 수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월 14일 무슨데이?
발렌타인데이와 함께 매월 14일은 기념일 이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월 14일 기념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1월 14일 : 다이어리데이
2월 14일 : 발렌타인데이
3월 14일 " 화이트데이
4월 14일 : 블랙데이
5월 14일 : 옐로데이
6월 14일 : 키스데이
7월 14일 : 실버데이
8월 14일 : 그린데이, 달데이, 껌데이
9월 14일 : 뮤직데이, 포토데이
10월 14일 : 레드데이, 와인데이
11월 14일 : 오렌지데이, 무비데이, 쿠키데이
12월 14일 : 머니데이, 허그데이, 양말데이
참 생각지도 않은 데이가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2월 14일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가 맞습니다. 하지만, 꼭 잊지 말고 알고 가셔야 할게 있습니다.
2월 14일은 바로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 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대동공보사에서 전해들은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자원했고 10월 21일에 대동공보사 기자 이강(李剛)의 지원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안중근은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哈尔滨, 哈爾濱(하얼빈), Harbin)에 도착했습니다.
당초 계획은 동청철도(東淸鐵道)의 출발지인 장춘의 남장춘(南長春), 관성자(寬城子)역과 도착지인 하얼빈, 채가구(蔡家溝)역의 4개 지점에서 암살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여 도착지인 하얼빈과 채가구에서 저격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고, 이에 따라 우덕순과 조도선은 채가구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공격하기로 했지만, 채가구역에서의 계획은 이를 수상하게 여긴 러시아 경비병에 의해 실패하게됩니다. 10월 26일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하얼빈에 도착했고,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대신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열차 안에서 회담을 가진 후 9시 30분경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브라우닝제 반자동권총 M1900으로 저격하기 시작하였고 이외에도, 일곱 발의 저격 총알 중, 나머지 네 발 중 세 발은 각각 옆에 있던 수행비서관 모리 타이지로우(森泰二郞), 하얼빈 주재 일본 제국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남만주 철도의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우(田中淸次郞)한테서 총격하였습니다.
저격 후,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 (Корея! Ура!)"
라고 크게 외쳤다. 이 외침은 대한 만세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안중근 의사는 체포 후 재판을 받게 됩니다.
6번의 공판 이후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함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게됩니다.
안중근 의사가 바로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2월 14일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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